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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디지털 문맹률이 걱정이다

본 칼럼은 중앙일보 편집국의 검토를 거쳐 https://news.joins.com/article/23817052#home에 게재되었습니다. 아래 내용은 편집국에 제출한 원문입니다.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문해력으로 해석되는 이 단어는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것처럼 디지털 정보 체계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할 줄 아는 역량’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글을 읽고 쓰지 못하면 문맹(文盲)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디지털 문해력이 부족하면 디지털 문맹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디지털 문맹률은 몇 %일까요? 


우선 디지털 문맹률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한글 기반 문맹률을 되짚어보면, 한국은 OECD가 조사한 ‘실질 문맹률’에서 OECD 국가 중 꼴찌를 차지한 바 있습니다. 비록 글을 읽고 쓸 수는 있지만 정작 문서로부터 필요한 정보를 취득하거나 기술을 학습하는 문자해독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OECD skills outlook 2013’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중장년층에서 실질문맹률이 특히 높게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한글을 기반으로 한 실질문맹률도 높은 상황에서 한국의 디지털 문맹률을 낙관할 수 있을까요? 특히 AI와 블록체인을 향한 국가적 인식 형편을 살펴보면 안타까운 부분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예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AI와 블록체인의 본질은 눈에 안 보이는 것인데, 우리 사회는 아직도 눈으로 보려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실제 비트코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인데, 다들 비트코인의 가격을 눈에 담으려고 합니다. 비트코인을 10개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비트코인이 실제로 내 스마트폰이나 주머니의 사적(Private) 공간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용(Public) 장부에 그 권리가 기록되어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블록체인 산업 육성의 비전을 제시하면서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허용하되 퍼블릭 블록체인은 꺼려하는 정책을 기획한다면 스스로 디지털 문맹임을 자인하는 것입니다. 


AI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AI 알고리즘 대부분은 공개돼 있고 개발자들의 협력과 헌신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픈소스 집단의 자발적인 문화와 디지털 대화법을 파악하지 못한 채, 국가적 전략을 수립함에 있어 한국 공문서에만 사용하는 특정 파일 양식에 맞춰 AI 표준화 전략 문서를 작성하고 있다면 스스로 디지털 문맹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둘째, AI와 블록체인의 철학은 한 번에 완벽한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아니라,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계속 개선해 나가는 귀납적 실행을 바탕으로 합니다. AI는 처음부터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의 반복을 통해 오류를 줄여가는 방식이 오히려 뛰어날 수 있음을 압도적인 사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트코인은 빈틈없이 틀어막은 완벽한 보안망을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중앙 서버조차도 없는 불안해 보이는 시스템이지만 사실상 안전할 수 있다는 개방형 자율시스템을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략기획자나 컨설턴트들이 어려운 단어를 남발하며 일목요연하게 작성한 문서를 조직의 대표에게 보고하여 승인받은 것을 가지고 자신의 능력으로 과시하거나, 마치 과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보는 것과 같은 형식의 문서를 도출해, ‘AI 5대 전략/블록체인 5개 핵심 과제’ 같은 것을 도출해서 그림이 좋다고 만족하고 있다면 스스로 디지털 문맹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셋째, AI와 블록체인의 비약적 발전은 복잡한 문제를 과감히 잘라 단순화하는 용기에서 만들어졌습니다. AI의 핵심 이론 교육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오캄의 면도날’입니다. 14세기 영국의 논리학자이며 프란체스코 수사였던 오캄은 사고절약의 원리를 다음과 같은 라틴어로 기술하였습니다.


1. 많은 것들을 필요없이 가정해서는 안 된다(Pluralitas non est ponenda sine neccesitate).


2. 더 적은 수의 논리로 설명이 가능한 경우, 많은 수의 논리를 세우지 말라(Frustra fit per plura quod potest fieri per pauciora).


딥러닝은 두꺼운 인공신경망을 빠르게 처리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과감히 무시하고 단순화시켜 진행하는 ‘Dropout’이라는 파격적인 발상을 통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냈습니다. 비트코인은 두 사람이 동시에 새로운 비트코인을 채굴하는 경우 누구를 소유권자로 인정할 것이냐는 난해한 문제에서 후속 채굴자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 무거운 체인을 선택한다는 단순한 규칙을 선포하며 풀어냈습니다. 만일 의전을 중시하고 관료적인 문화를 가진 조직이 AI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전환을 주장하고 있다면, 먼저 오캄의 면도날의 교훈을 들여다 보아야 할 것입니다. 


넷째, 새 술을 새 부대에 제대로 담으려면, 새로운 지식을 과거의 지식 체계로 판단하는 오류를 경계해야 합니다. 비트코인의 승인 속도가 느리다고 해서 실생활에 사용하기 어려우므로 화폐가 될 수 없다는 논리로 폄하해서는 안 됩니다. 케인즈는 일찍이 화폐 수요 이론을 통해 사람들이 화폐를 필요로 하는 이유에는 거래적 동기뿐만 아니라 예비적 동기와 투기적 동기도 있음을 제시했습니다. AI 기반 자율주행 자동차의 안전성에 관한 규제를 설계할 때, 사람이 운전할 때 벌어지고 있는 상당수의 음주운전과 난폭운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AI와 블록체인에 대한 국가적 지원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만, 꽤 많은 분들의 관심이 정부 예산의 ‘예타면제’(예비타당성 면제)에 쏠려 있는 것 같습니다. 딥러닝의 대부 제프리 힌튼 교수와 비트코인의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가 이 모습을 보면 과연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합니다.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도로 블록체인 육성 전략이 발표되었지만 ‘한국의 비트코인 점유율 향상’ 목표가 빠진 것도 안타깝습니다. 국제 시장에서 눈에 보이는 반도체와 자동차 시장의 점유율을 관리하고 있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비트코인 점유율과 가상자산 점유율도 목표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한국은 천주교가 전파되기 전에 선교사에 의존하지 않고 천주학을 통해 스스로 학습한 나라입니다. 비트코인과 가상자산을 소화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학교 속의 문맹자들’이라는 도서에 의하면 1945년 당시 한국의 문맹률은 78%에 달했습니다. 이제 2020년 한국의 AI와 블록체인 지식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문맹률을 조사한다면 과연 다른 숫자가 나올지 궁금합니다. 


성경에는 맹인이 눈을 뜨는 장면을 보며 우리도 눈을 뜰 수 있느냐는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사실은 보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9장)


김문수 aSSIST 경영대학원 부총장 및 크립토MBA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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